허튼소리2008/01/04 01:56

[2005년 5월 7일 작성]


원제 : H.M.S ULYSSES

작가 : 알리스테어 매클린

출판 : 동서문화사 (동서 미스테리 북스 82)


이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북극해에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스코틀랜드 북단의 '스카파 플로'항에 귀함한 영국 해군의 순양함 '율리시즈'호는 잠시의 휴식도 취하지 못한채 다시 중요한 임무를 하달받습니다. 소형 항모 4척을 포함 14척의 군함으로 이루어진 함대의 기함 자격으로 북진, 덴마크 해협에서 전차와 비행기와 군용 연료 등을 수송하는 수송선의 무리와 합류하여 그 선단의 목적지인 소련의 무르만스크까지 호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당시 북극해는 독일 잠수함 U-보트와 4만 2천톤급의 거대한 전함 티르피츠호가 이끄는 군함대에 장악된 상황입니다. 너무도 오랜 기간을 휴식없이 임무에 투입되었던 율리시즈호의 선원들은 이미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고갈된 상태, 그러나 명령은 수행되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함장인 베럴리 대령은 지쳐빠진 대원들을 다독여 다시 험난한 항해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함대는 출발 이틀째부터 난관에 부딪칩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의 추위, 시도때도없이 출몰하는 독일 잠수함의 위협, 도처에 깔려있는 기뢰, 수면부족과 배고픔과 동상을 비롯한 갖가지의 질병, 게다가 어마어마한 폭풍우까지 밀어닥칩니다. 항공모함 한 척이 기뢰에 걸려 함수(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부분)이 파괴되는 사고를 시작으로 함대의 군함들이 하나둘씩 기능을 잃고 회항하거나 침몰하고, 항해 사흘째인 수요일에 수송선단과 합류했을 때는 이미 항공모함 4척을 비롯한 9척의 함선을 잃고 겨우 다섯척의 군함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독일 군함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독일 해군의 기민한 작전에 말려들고, 호위함 제독인 틴들 사령관의 판단 착오까지 겹쳐 영국 함대는 그야말로 박살이 납니다. 패전의 책임감 때문에 제독은 정신 상태가 망가져버리고, 결국 기함 율리시즈호의 함장인 베럴리 대령이 함대를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베럴리 대령도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 게다가 율리시즈호는 레이더 장치와 음파 탐지기까지 파괴되어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할 최소한의 기능까지 상실한 판국입니다. 본국 해군본부에 지원 요청을 보냈지만 묵살되어 버리고, 날아온 명령은 무르만스크를 향해 계속 전진하라는 것. 순양함 율리시즈호의 앞날은 과연 어찌될까요.


이 소설은 추리문고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굳이 명칭을 달자면 모험소설이라고나 할까요.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 군상의 모습과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위험한 상황이 그야말로 리얼하게 묘사되어 한순간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도록 만듭니다. 다 읽고 책장을 덮으니 저절로 한숨이 쉬어지고, 어깨가 뻐근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느끼게 되더군요. '처절함'이라는 말이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사투(死鬪)'가 과연 어떤 것을 뜻하는 가를 알고싶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 될 것입니다. 스릴러 소설 100선 따위를 뽑으면 늘 상위에 랭크되는 작품인데 과연 과연 명불허전이네요. (일본의 독자들은 1위로 뽑았더군요)


알리스테어 매클린은 이 작품을 처녀작으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나바론 요새' '북극 기지 제브라' 등의 걸작 모험 소설을 남겼습니다. '북극 기지 제브라'는 고립된 북극의 연구 기지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묘사한 추리 소설인데, 역시 한 번 잡으면 끝을 보기 전에는 놓지 못할만큼 재미가 있습니다. '나바론 요새'는 에게해에 자리잡고 있는 나바론이라는 섬에 위치한 독일군 요새의 거대한 대포를 폭파하려는 연합군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레고리 펙, 안소니 퀸, 데이비드 니븐 등이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재미라는 면에서는 어느 영화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 작품이지요.


아무튼, 선이 굵직한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여왕폐하 율리시즈호'는 그야말로 초강추에 필필필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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