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천재 시인이자 생육신의 한 분으로 유명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칠언절구 한 수 소개합니다.


              -  食 粥  -   (죽을 먹고서)


白粥如膏穩朝餐     흰죽은 부드러워 아침으로 좋구나
(백죽여고온조찬)

飽來偃臥夢邯鄲     배부르니 편히 누워 헛된 꿈을 꾸어보네
(포래언와몽한단)

人間三萬六千日     사람의 일생 삼만 육천 날
(인간삼만륙천일)

且莫咻咻多苦辛      편하다 말하지 말게나, 고생이 많으리니
(차막휴휴다고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드러눕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편안하게 드러누우면 당연히 잡생각이 떠오르지요. 등따시고 배부르면 만사형통인 법, 기분도 좋고 무슨 일이든 잘 풀릴 듯하고 웬만한 걱정거리는 아스라히 사라집니다. 매월당 선생도 부드러운 흰죽으로 아침밥을 드시고 이런 기분에 빠져든 모양입니다. 여기까지가 앞 두 구절이지요.

이어지는 두 구절은 말하자면 반전입니다. 달콤한 공상이나 꿈[한단지몽 邯鄲之夢]에서 퍼뜩 깨어나 현실로 돌아와보니,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많고 많은 나날들, 늘 배불리 먹고 편안히 드러누워 느긋한 기분을 만끽하며 보낼 수는 없겠죠.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편하다고 마음 놓지 말라는 얘기일까요? 게으름은 적당히 피우고 열심히 살라는 얘기일까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읽은 분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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