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6일 작성]
언제였더라... 작년 봄인가보다.
술을 마시다가, 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외로울 조건을 두루 갖춘 인간인데 실제로 외로움을 느끼는 적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녀석은 외로움이 이미 생활화되어 늘 같이 살고있으므로 느끼고 자시고가 없다고 말했고, 또 한 놈은 인간이 덜떨어져서 그렇다고 했으며, 또 한 놈은 시시한 소리 하지말고 술이나 마시라고 했고, 마지막 한 녀석은 자기가 있기 때문에 내가 외롭지 않은 것이라며 킬킬거렸다.
어느 녀석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맘에 드는 것은 술이나 마시라는 얘기였기에 그렇게 했다.
몇 잔 술잔이 오가고, 한 녀석이 한시 한 수 읊기를 청했다. 나는 늘상 한자의 뜻으로 새기면 멋진 시가 되지만 한글 음으로 읽으면 걸죽한 욕지거리가 되는 김삿갓의 시를 읊어주었었다. 술자리에서 읊고 놀기엔 아주 딱이다.
그런데 그날은 김삿갓 대신 이백 할아범이 떠올랐다. 그래서 읊었다.
兩人對酌하니 山花開로다, 一杯에 一杯, 復一杯로다,
我醉欲眠이러니 君且去라, 明朝有意면 抱琴來하라.
글로 적어준 것도 아니니, 뜻을 새겨주지 않으면 한 대 맞을 분위기였다. 그래서 새겼다.
물론 내멋대로 번역이고 내키는대로의 의역이다.
우리가 마주 앉아 술 푸니
산에 꽃이 피는구나
한 잔 먹고, 한 잔 치고
또 한 잔 마시고
난 취해서 자야겠으니
너는 이만 가거라
내일 아침에 맘내키면
거문고 안고 오고
좋다고 했다. 뭐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친구랑 술먹으니 산에 꽃이 핀다는 구절부터 죽인다고 한다. 이 놈이 기특하게도 나하고 똑같은 느낌이라는 것이 기뻐서 술 한 잔 쳐주었다. 간혹 첫 구절을 '꽃이 핀 산에 두 사람이 대작하네' 등으로 번역하는 분들이 있다. 뭐 그럴듯하기도 하고, 맞는 번역일지도 모르지만 멋대가리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꽃이야 이미 피어있는 것이지만 좋은 사람과 술을 마시니 비로소 꽃이 꽃답게 보인다는 것이 시답다. 그리고 시는 어느정도 내맘대로 읽어도 된다.
둘째 구절, 익어가는 술자리를 단 일곱자로 저것 보다 더이상 어떻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기막힌 구절이니 사람들 입에 계속 오르내리고, 거의 관용구처럼 쓰이는 것이리라
세번째 구절도 참으로 오묘하다. 자유로움과 호방함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따스함이 절묘하기만하다. 얼핏 보면 축객령 같지만 뜯어보면 가식이나 범절을 차리지 않아도 될 친구에게 향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이 있다. 그냥 내일 다시 오라고만 했다면 이 시의 품격은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有意' 즉 마음이 동하면 오라는 것이다. 내키는대로...
이백은 정말 하늘에서 귀양온 신선이 맞는 것 같다. 산중문답(山中問答)도 좋고, 월하독작(月下獨酌)도 좋지만 이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이 내겐 최고 중 최고다.
아무튼 그렇게 놀다가 우리도 취해서 흩어졌다.
방금 전, 정말 오랜만에 외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늘 그렇듯이 별로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득 작년 봄 술먹던 기억이 났다.
내일 문자라도 하나씩 보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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