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5일 작성]
- 絶 句 -
江碧鳥逾白 강이 짙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강벽조유백)
山靑花欲然 산이 푸르니 꽃은 불타려는 듯
(산청화욕연)
今春看又過 올해 봄도 보기만하며 또 지나가니
(금춘간우과)
何日是歸年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가리오
(하일시귀년)
시선(詩仙) 이백의 시는 소개하면서 시성(詩聖) 두보의 시를 소개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요. 누가 뭐래도 한시 문학의 최고봉인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고, 또 서로 친분 관계도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글재주를 인정하고 찬미하기도 했었지요. 고수(高手)가 고수를 알아본다는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하나는 신선이라 부르고 또 하나는 성인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아마도 각자의 시풍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전부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그저 몇 편 흝어보아도 이백의 시는 속세를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고, 두보의 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픔과 서글픔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본 것들이 많은 듯합니다. 이백의 시를 읽으면 탈속한 경지를 보는 듯하고 두보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아픈 기분이 들곤합니다. 그래서 제 경우, 두보의 시는 쉽게 읽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소개드린 작품은 그 중 좀 읽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경치를 그림처럼 묘사하고 거기서 마음속 심사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한 작품입니다. 강과 산이 푸르르니 새는 더욱 희고 꽃은 마치 불타듯이 붉다는 처음 두 구절은 수많은 모방과 아류작을 낳았습니다. 이거 어디선가 다른 작품에서 본듯하다는 느낌이실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바로 두보의 이 구절의 영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화창한 봄날의 경치를 이보다 더 간결하고도 멋지게 표현한 구절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두보는 화려한 경치를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하게 됩니다. 타향에서 봄을 맞고 그저 바라만보다가 또 그저 세월은 흘러가버립니다. 또 우(又)자의 쓰임이 절묘하지요. 타향에서 봄을 맞는 것이 이미 오래라는 의미가 이 글자에 다 들어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 고향에 돌아갈 기약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 숨어있다는 것은 쉽게 보입니다.
이 시도 자꾸 읽고 느낄수록 가슴아픈 작품입니다. 두보의 작품들은 대충 다 그런 듯합니다. 그래서 좋으면서도 읽기가 좀 무섭거든요. 그렇다고 읽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앞으로 몇 편 더 소개드려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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