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9일 작성]
- 久 雨 -
장마비
窮居罕人事 궁하게 살다보니 인사차릴 일도 없어
(궁거한인사)
恒日廢衣冠 날마다 의관도 갖추지 않는다네
(항일폐의관)
敗屋香娘墜 낡은 집에는 노래기 떨어져 있고
(패옥향낭추)
荒畦腐婢殘 황폐한 들판엔 팥꽃만 남았구나
(황휴부비잔)
睡因多病減 병이 많아 잠도 줄어드니
(수인다병감)
愁賴著書寬 글이나 지으며 수심을 달래본다
(수뢰저서관)
久雨何須苦 오래 비 온다고 무엇이 괴로우랴
(구우하수고)
晴時也自歎 날이 개어도 스스로 탄식할 것을
(청시야자탄)
시를 읽다보면 어찌 내 마음과 이리 비슷할 수 있는가 하는 느낌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소개드린 시가 바로 그런 경우.
태산과 같은 재주와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 뜻을 펼치지 못하여 수심에 빠져있는 다산(茶山) 선생의 처지에 감히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방자한 자세로 자빠셔서 구절구절 읽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네요. 날씨는 궂고, 잠을 편히 못자서 그런지 더욱 찌부드드한 저녁입니다.
다산(茶山) 선생께서 유배지에서 지내며 지은 것으로, 선생의 절망감이 아프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귀양살이하는 곳에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고 그러니 의관을 정제하고 있을 일도 없습니다. 초라한 집구석에는 벌레만 생기고, 처지가 한심하니 들판도 황폐하게만 보이겠지요. 마음의 병이든 몸에 든 병이든 단잠마저 방해하는 지경이라, 그저 글줄이나 지으면서 수심을 달래봅니다. 마지막 두 연은 참으로 서글픈 느낌을 줍니다. 날이 개어도 뭐 달라질 것이 있겠느냐는 체념은 아마도 혼탁한 세상에 대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 계속되는 비는 기약없는 유배생활을 뜻하고, 개인 날은 유배에서 풀려날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겠는데, 귀양살이를 마친다고 장밋빛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선생의 근심은 자기 자신의 영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각박한 세상 살이에 허덕이는 민초들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원대한 포부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바에야 궂은들 개인들 거기가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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