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호민론(豪民論) 한시 & 한문  

2008/01/04 15:40

[2006년 1월 20일 작성]

허균선생에 관한 연구논문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글이 '호민론(豪民論)'입니다. 임금에 대한 충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백성은 교화의 대상으로 여기는 성리학이 국가 통치의 근본 이념이자 거의 모든 학자들의 가치관이었던 시절에 허균선생은 '백성은 두려워해야만하는 존재이며, 특히 백성들 중 호민에 속하는 자들이 떨쳐 일어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위정자들이 정신 못차리고 백성을 핍박하면 불평불만이 쌓이고, 결국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은 천리를 거스르는 정치를 하면 천리를 따르는 선택된 누군가가 천명(天命)을 받아 새로운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은 그 지도자를 어버이를 따르듯 붙좇는 존재일 뿐이고요. 이 정도의 사상도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성리학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왕조가 바뀐다는 사실 자체가 맘에 들지 않을테니까요. 허균은 혁명을 일으키는 요인을 압제에서 비롯된 분노로 보았고, 혁명의 주체를 천명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원한에 찬 백성으로 보았습니다. 무척이나 급진적이고, 시대를 뛰어넘는 생각이지요.

이 주장이 명확하게 드러난 글이 바로 소개드릴 호민론인데, 겉으로는 정신차리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쳐서 그들이 분노하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호민의 등장을 은근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듭니다. 반(叛)이나 적(賊) 따위의 글자를 쓰지않고 호걸이니 호협이니 하는 낱말에 쓰이는 '뛰어날 호(豪)'자를 쓴 것만해도 허균선생의 혁명주체에 대한 감정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듯합니다.

더러 의역을 하면서 우리말로 옮겨봤는데, 결과는 의미만 겨우 통할 정도에 불과합니다. 원문을 읽으면 느낄 수 있는 호방함과 박력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네요.

------------------------------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은 오로지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호랑이나 표범보다 훨씬 두려운 것인데, 윗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들을 업수이 여기면서 모질게 부려먹는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지?

대개 이루어진 일이나 함께 즐거워하면서, 항상 눈앞의 일에만 얽매여있고, 순순하게 법을 받들며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는 항민(恒民)이다. 항민은 두렵지 않다.
모질게 착취를 당하여 피부를 벗기우고 뼈가 부숴지면서도, 집에 들어온 수입과 땅에서 나는 소출을 끝없는 요구에 다 바치면서 시름하고 탄식하고 윗사람을 원망하는 자는 원민(怨民)인데, 이 원민도 반드시 두려운 것은 아니다.
푸줏간 속에 종적을 감춘채 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서 세상사를 흘겨보다가 사고를 저지를만한 때를 만나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실현하고자하는 자는 호민(豪民)인데, 이 호민이라는 자들이야말로 크게 두려운 존재이다.

호민이 나라의 틈을 살피고 저지를 기회를 엿보다가 밭두렁 위에서 팔을 휘두르며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원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고 함께 계획하지 않고서도 똑같이 외쳐댄다. 항민들도 또한 살길을 찾고자 어쩔 도리없이 호미와 고무래, 창, 몽둥이 따위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의 난리 때문이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황건적의 난이 원인이었으며, 당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와 황소가 그 틈을 타고 난을 일으켜 끝내는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 이는 모두 백성을 괴롭히고 자기만 위하는 잘못을 저질렀기에 호민이 그 틈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릇 하늘이 위정자를 세운 것은 백성을 돌보려는 것이지 단 한명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계곡을 채울만한 큰 욕심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진나라와 한나라 등등의 재난은 마땅히 당한 것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땅은 좁고 험준하며 인구도 적다. 백성들 또한 나약하고 게으르며 잗달아서 기특한 절개나 호협한 기상이 없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뛰어난 인물이나 재능있는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임이 되는 일도 없었으나, 난리를 당해도 호민이나 사나운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앞장서서 나라의 근심거리가 되는 일도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록 그러하지만 지금의 시절은 고려 때와는 다르다. 고려에서는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함에 한도가 있었고, 산과 못에서 나는 이익을 백성들과 함께 누렸으며, 장사할 길도 열어주고 기술자에게도 혜택을 베풀어주었다. 또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하였으므로 나라에 여분의 저축이 있어서 갑작스런 큰 병난이나 상사가 있어도 세금을 더 걷지 않았다. 그 말기까지도 오히려 흉년을 걱정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궁핍한 백성에게 거둔 것으로, 귀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모시는 범절은 중국과 똑같이 하고 있다. 백성들이 다섯푼의 세금을 내면 나라에 들어오는 이익은 겨우 한푼이고 나머지는 간사한 놈들에게 어지럽게 흩어진다. 또한 고을 관청에서는 여분의 저축이 없어서 무슨 일만 있으면 일년에 두번씩 세금을 부과하며, 고을 수령은 이를 빙자하여 마치 키질하듯 가혹하게 거두기를 끝이 없을 지경으로 한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고려 말기보다 훨씬 심각한데도, 윗사람들은 태평하게 두려움을 모르니, 우리나라에는 호민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견훤이나 궁예와 같은 자가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시름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지 않을 것을 어찌 보장하겠는가. 기주와 양주에서 일어났던 난리처럼 천지를 뒤엎는 변란을 발을 꼬고 앉아서 기다릴 셈인가.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가 두려워할만한 형세를 똑똑히 알아보고서 활시위를 팽팽히 하고 바퀴를 고치듯 대비해야 옳을 것이다.

이하는 원문입니다. 참고하세요


[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글 ]
2008/01/04 15:40 2008/01/04 15:40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mojolog.com/tcb/trackback/166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