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앨범 어떻게 살까나..
[2006년 7월 4일 작성]
블루스 앨범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는 우리나라에 한정된 말이고, 외국 음반 판매 사이트에 가보면 블루스 앨범의 방대함에 기가 질릴 정도입니다. 블루스의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영감님들의 앨범은 현재 CD로 팔리고 있는 것들만 100 단위가 쉽게 넘어갑니다. 비비 킹이나 존 리 후커 할배처럼 오래 생존하면서 만년까지 활동한 분들의 경우는 200 종류 가까운 앨범이 나와있더군요. 오랫동안 잘나가는 뮤지션들의 앨범 숫자도 보통 삼사십을 넘기지 않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죠.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블루스의 앨범 제작 방식이 좀 남다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보통 어떤 뮤지션이 히트곡 모음집이나 라이브가 아닌 신규 앨범을 내면 거의가 신곡으로 채워져있지요. 블루스 대가들의 신규 앨범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신곡은 드물고 대부분이 과거에 이미 발표한 곡을 새로 연주하여 녹음한 것으로 채워지거든요. 즐겨 부르는 레파토리가 한 백여곡 있다면 그 중에서 몇 곡 고르고, 대표적인 히트곡 중 두어 곡 포함시켜서 앨범 이름 붙여서 내보내는 거죠.
다른 장르에서 이런 식으로 우려먹기하다가는 어쩌면 욕을 좀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블루스에서는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습니다. 으레 그러는 것으로 여긴답니다. 왜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추측컨대 블루스가 원래 앨범보다는 싱글판이 위주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 할배들이 젊고 잘나가던 시절인 1950년대에는 특히 앨범 제작이 드물었고 싱글만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60년대 들어 나오기 시작한 앨범에 과거 발표했던 싱글 음악들을 묶어 넣은 것이 나중까지 이어진 듯해요.
이런 식이라 매년 한두장씩 신규 앨범이 척척 나오고, 거기다가 라이브 앨범도 가끔 나오고, 또 음반사에서 대표곡 모음집도 심심하면 내놓으니 전체 앨범 숫자가 날로 늘어만 가는거죠. 상품이 많으니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이 당연히 따라오고요.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게 도리어 장점이 될 수도 있답니다. 앨범마다 완성도면에서 큰 편차가 없다는 점이죠.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곡이 담겨있고, 그 중 대표적인 히트곡은 얼마나 되는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도고 할 수 있답니다. 히트곡을 비롯하여 CD에 포함된 수록곡이 많은 놈, 바로 '대표곡 모음집'입니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블루스 대가들의 앨범들은 완성도가 비슷비슷하고 앨범마다 따로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이 다른 장르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처음 블루스 앨범을 구해 들어보려는 입문자에겐 수록곡이 한 스무남짓되는 대표곡 모음집이 최적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입지요. 즉, 'Best' 'Essential' 'Collection' 'Anthology' 'Complete' 'Gold' 따위의 단어들이 조합되어있는 이름을 가진 앨범을 구입하면 본전생각나는 일은 거의 안생긴다고...
요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한두장 구해서 듣다보면 더욱 취향에 맞는 쪽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게되면 좀 더 깊고 넓게 들어보고싶은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됩니다. 이 단계에 이른 분들에게는 우선 라이브 앨범을 하나둘 공략해보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네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라이브 앨범에는 스튜디오 녹음과는 다른 생생한 맛이 있지요. 밴드에 참여한 뮤지션들과 특히 맘에 들었던 노래들이 연주되었는가 정도를 살펴보면 선택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음악사에 의미가 있는 앨범이나 극찬을 받는 명반을 구하는 단계가 찾아오고, 한 걸음 더 나가면 기타는 누가 치고, 피아노와 하모니카는 누가 연주했는지를 꼼꼼히 찾아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참여했으면 그의 소리가 듣고싶어서 앨범을 구입하는 단계에 이르게 될겁니다. 오티스 스팬의 피아노를 들으려고 플리트우드 맥의 초기 앨범을 구한다거나 뭐 이런 지경이 되죠. 여기부터는 뭐 알아서 정보도 찾아다니고 나름대로의 선택 기준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제가 이 단계의 초기 정도에 있는 듯해요;;
여기서 더 나가면 발표된 모든 앨범을 소장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거나, 더 나아가서 특정 뮤지션이 한 곡이라도 부르거나 연주한 곡이 들어있는 앨범까지 몽땅 가지고 말겠다는 포부를 품는 무시무시한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돈과 시간을 무지막지 잡아먹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눈꼽만큼도 안하는 단계, 즉 '매니아'가 되는거죠. 이 단계는 아무나 도달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저같이 기본적으로 열정이 모자란 인간은 절대 이렇게 안되죠. 은근히 다행이라고 여긴답니다...
벽헌
2008/01/04 17:46
2008/01/04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