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4일 작성]


임자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대부분 주위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자기의 사랑이 아무리 지고지순한 것이라도 남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기가 쉽지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정곡을 찌른 말씀입니다.


엮어놓은 지중해님 포스트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느분께서 다른 사람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서 괴로워하고 계신가봅니다. 지중해님 말씀대로 그만두고 잊는 것이 최선의 충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위에 임자있는 몸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역시 말리게 될 듯하네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썩은 무 반토막 내듯 단칼에 요절을 낼 수 없는 성질이라는 점이 문제죠. 불륜이라는 시각으로 보지 않고 괴롭고 아파하는 당사자의 처지를 가늠해보자면 그저 딱하고 안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꼬리를 물다보니 참 애절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던 로맨스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은 최서희가 맞겠죠. 수백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지만 평사리 최참판 댁의 부침이 중심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토지하면 용이와 월선이가 떠오릅니다. 비중있는 조연 정도의 역할이 맞을텐데, 제게는 저 둘이 꼭 주인공같아요. 그래서 저들이 나오지 않는 후반부는 읽는 재미를 좀 덜 느끼곤 했었죠. 아무튼, 용이랑 월선이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다들 아시는 내용이라서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평사리 최고의 총각 용이와 곱디고운 처자 월선이는 사랑하는 사이. 하지만 용이의 어머니는 월선이가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둘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효자인 용이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원치않는 사람에게로 장가듭니다. 애정이 없으니 행복할리가 없죠. 게다가 마누라 강청댁은 살림 재주도 없고 강짜도 심한 여인네(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니 그리되는 것이 당연하다 싶기도 해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데, 어디론가 사라졌던 월선이가 돌아와 읍내에 주막을 차립니다. 용이는 어느 설날 읍내로 오광대 구경을 나갔다가 월선이와 정을 통하게 되고, 괴롭고도 달콤한 밀회가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강청댁에게 탄로가 나고, 월선이는 다시 사라져버립니다. 강청댁이 역병에 걸려 죽고, 용이는 어찌어찌 하다가 과부 임이네와 살림을 차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도 용정땅에 가서 잠시 함께 살아보기도 하지만 극악스럽기로 천하에 짝이 없는 임이네가 본처로 있는 이상 맘 편히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용이는 용정을 떠나고, 두 사람은 일년에 한두번 만나는 것이 고작인 처지가 되고말지요. 결국엔 월선이가 암에 걸려 죽는 것으로 두 사람의 기구한 인연은 끝이 납니다.

길어진 김에, 죽음을 앞둔 월선이와 그녀와 마지막을 함께 하고자 찾아온 용이가 해후하는 장면을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십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십니다."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댄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 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어쩌면 이리도 기막히게 표현했을까요!! 읽어본 소설 중에서 가장 애절하고 서글픈 이별 장면을 꼽으라면 이 부분을 들 것입니다. 명장면 중의 명장면 같아요.

마지막으로 님의 얼굴을 보고자 촛불처럼 가느다란 숨을 꼭 붙들고 기다리던 월선이,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던 여인의 죽음을 마주한 사내. 이십년이 넘도록 서로 사랑하면서 이들에게는 행복보다는 고통과 아픔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한이 없다고 그럽니다. 진심으로, 남김없이, 절절하게 사랑했으니까 그런가봅니다. 어쩌면 여한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인은 남아야할 사내를 위해서, 사내는 또 가는 여인을 위해서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한이 있든 없든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둘이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며 사랑을 이어왔다는 것이 요점이지요.


이들처럼 할 수 있을 자신이 있다면, 남들이 불륜이라 그러든 말든 한번 해볼만한 사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신이 없다면 그야 물론 처음에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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