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16일 작성]


                  刈 麥 謠  -
                    보리 베는 노래

田家少婦無夜食      시골집 젊은 아낙 저녁 거리가 없어서
(전가소부무야식)

雨中刈麥林中歸      빗속에 보리 베어 숲속으로 돌아오니
(우중예맥림중귀)

生薪帶濕煙不起      생나무는 습기 먹어 불길도 일지 않고
(생신대습연불기)

入門兒女啼牽衣      문에 들어서니 어린 딸은 옷 잡고 우는구나
(입문아녀제견의)


손곡(蓀谷) 이달이 동산역(洞山驛)이라는 곳을 지나며 지었다는 시입니다. 상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을 작품으로 옮겼다는 추측이 가능하지요. 이달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비참하게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고 그 정황을 곡진하게 그린 시를 여러 수 남겼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아딜이달의 제자인 허균이 이 작품을 평하기를 '먹을 것이 없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렸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지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먹을 거리가 떨어졌습니다. 젊은 아낙은 별 수 없이 빗속에 들로 나가서 보리를 베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서 보리밥이라도 지어서 자식들 끼니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땔나무도 습기를 먹어서 불이 잘 붙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린 딸은 어머니 옷을 붙잡고 울기까지 합니다.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일 수도 있겠고, 자다가 깨어보니 어머니가 안보여서 겁을 내던 차에 다시 어머니를 보자 저절로 울음이 터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애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군역에 끌려 나간 것일까요? 아무튼 남편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처량하게 만듭니다. 비와 습기에 젖은 땔나무 등의 소재도 처량함을 표현하는데 한 몫을 제대로 하고요.
여하튼 측은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한시는 팔자 좋은 양반네들이 경치 좋은 곳에 모여서 유희삼아 짓는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이라고들 하지요. 그런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지어진 한시들은 지금까지 전해지지가 않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살아남아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품격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수 있겠습니다. 소개드린 작품을 과연 어느 누가 음풍농월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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