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途 中 -
길에서
日入投孤店 저물녘 외딴 객점에 들다
(일입투고점)
山深不掩扉 산이 깊어 사립문도 닫지 않은 곳
(산심불엄비)
鷄鳴問前路 닭이 울 때 갈 길을 자문하니
(계명문전로)
黃葉向人飛 누른 낙엽만 날아오누나
(황엽향인비)
권필의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입니다. 벼슬자리에 마음이 없어 산야를 떠돌며 시와 술을 즐기며 지냈고, 스스로 자기의 성품이 강건하고 바른말을 하기 좋아하여 화를 당하기 십상이라 여기고 숨어지내려 했답니다. 하지만 시를 짓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시를 짓다보면 자신의 마음이 깃들게 마련이고 세상일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 섞이지 않을 수 없지요. 게다가 그 작품이 빼어나 시가 나오면 금방 입에서 입으로 퍼져 널리 알려지곤 했답니다. 그러니 비판이나 풍자의 대상이 되는 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요. 결국 필화를 입어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룰게요.
소개한 작품에도 세상을 버리고 떠돌이로 지내는 작가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참으로 쓸쓸하고 고적합니다. 해가 떨어진 후 고적한 산중에 외따로 떨어진 객주집, 나그네는 반가운 마음에 지친 몸을 쉬려고 들어섭니다. 깊은 산이라 오가는 사람도 적을 것이고, 도둑맞을 걱정도 없어서 사립문도 닫지 않고 열어 놓았습니다. 혹은 언제든 지친 길손이 부담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인장의 배려일 수도 있겠죠. 객점은 이 험한 세상에서 그나마 잠시라도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휴식은 짧습니다. 닭이 우는 새벽이 되면 다시 길로 나서야하니까요. 세번째 구절의 '問前路(문전로)'는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으로 새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의역을 하자면 '이제 어디로 갈까나' 정도가 알맞겠지요. 가기는 가야겠는데 갈 곳은 마땅하지 않은 신세를 표현한 구절이겠죠. 갈 길을 모르는 나그네에게 누렇게 물든 나뭇잎 한 장이 날아듭니다. 자기 신세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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