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낙조(漁村落照) - 이인로(李仁老) 작
[2005년 8월 10일 작성]
- 漁 村 落 照 -
어촌의 저녁놀
草屋半依垂柳岸 초가집은 버들 늘어진 언덕에 반쯤 기댔고
(초옥반의수류안)
板橋橫斷白蘋汀 널다리는 흰 마름 핀 물가를 가로질렀네
(판교횡단백빈정)
日斜悠覺江山勝 해질녘 한가로이 깨닫는 강산의 아름다움이여
(일사유각강산승)
萬頃紅淨數點靑 만 이랑 붉은 물결에 몇 점의 푸르름
(만경홍정수점청)
고려 말엽의 시인 이인로 선생의 작품입니다. 해가 떨어질 무렵 노을이 붉게 물든 어촌의 풍광을 읊은 작품이지요. 앞의 두 구절은 특별히 대수로울 것 없는 어촌의 모습입니다. 강가에 늘어진 수양버들에 기대듯이 지어진 초가집이 있고, 마름풀이 피어있는 물가에는 나무로 만든 다리가 걸려있습니다. 시인이 어촌 어디쯤 자리잡고 앉아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추측컨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을 듯합니다. 3연에서 해가 기울자 경치가 아름다운 것을 깨달았다고 노래한 것을 보면 해가 지기 전부터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음이 분명하거든요. '悠(유)'자의 해석이 참 까다롭습니다. '멀다, 한가하다, 아득하다, 생각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아름다움을 별안간에 홀연히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차차 변화하는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새록새록 그 아름다움이 밀려들었다는 의미 같습니다. 척 보고 '우와~ 멋지다!'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아무튼 '한가로이'라고 옮긴 것은 아주 모자란 번역임은 분명해요. 능력의 한계라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시인이 깨달았다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노을 빛으로 붉게 물들었고, 강물도 역시 노을빛에 붉게 물들었으니 온통 붉은색 일색인데 저 멀리 점점이 푸르른 산이 보입니다. 일곱 글자로 산수화 한 폭을 그려내었습니다. 절창(絶唱)이지요.
문득 요즘 같으면 이런 경치를 만났을 때 카메라를 꺼내드는 분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장 사진에 담아서 잘 찍힌 놈을 골라 블로그에 올려도 좋겠죠. 내 눈에 비친 그 아름다운 풍경을 거의 고대로 담아서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할 수 있으니 참 좋고 편한 세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옛사람들은 카메라가 없었으니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짓는 수밖에 없었는데, 비록 똑같은 장면을 볼 수는 없지만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맛은 이쪽이 더 윗길이지요. 상상을 잘하면 작가가 본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도 있고요. 요게 바로 문학이 갖는 매력인가봅니다.
벽헌
2008/01/06 23:06
2008/01/06 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