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詠   魚  -
                  물고기를 읊다



圉圉紅鱗沒又浮    붉은 비늘 물고기 잠겼다가 떠오르니
(어어홍린몰우부)

人言得志任遨遊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 뜻대로 노는구나
(인언득지임오유)

細思片隙無閑暇    사실은 잠시도 한가할 짬이 없다네
(세사편극무한가)

漁父纔歸鷺又謀    어부가 돌아가니 백로가 노린다고
(어부재귀로우모)




오랜만에 고려시대의 대시인(大詩人) 이규보(李奎報)의 한시를 한 수 감상해봅니다.

간결하고도 재미있으며, 운치보다는 재치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물고기가 강물 밖으로 드러났다가 속으로 사라졌다가 신나게 헤엄치는 모양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응당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잡아서 구워 먹었으면 좋겠다, 술안주에는 매운탕이 제격인데, 고기가 있는걸 보니 물이 맑은가보다, 저 물고기의 학명은 뭘까, 등등등... 물론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규보의 노래처럼 제멋대로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시인은 말합니다. 그게 보이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고요. 물고기는 살기위해 바둥거리고 있다는 것이죠. 어부의 낚시바늘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자 백로의 뾰족한 주둥이가 노리는 적자생존의 환경에서 말입니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세상일이 겉보기와 실제 사정은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제삼자의 눈에는 좋게만 보이고 부럽게만 여져지는 것들이 당사자에겐 전혀 아니올시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교에서 일등하는 아이를 보며 공부잘하니 참 좋겠다고 하지만, 그 아이는 공부하느라 못놀고 못자면서 혹시라도 수석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거나. 돈 잘버는 남편 덕에 호강한다고 여겨지는 여인네가 실제로는 바람끼많은 남편 때문에 독수공방하며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거나. 예쁘고 날씬해서 선망의 대상인 아가씨가 카드빚에 허덕이는 신용불량자라거나. 뭐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듯합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법, 드러난 현상만으로 속에 감춰진 진실을 꿰뚫어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안다'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주제에, 게다가 오로지 자신만의 정확하지도 않은 잣대를 가지고 멋대로 재단합니다. 이런 웅성거림을 듣다보면 우리같이 우매한 종자는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입니다.
문득, 세상엔 자기가 현명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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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ighterreply | del   2008/12/17 23:53
    오호 이런 뜻이었군요! ^^
    • 벽헌del   2008/12/18 00:02
      그런가봐요. 물론 제 생각에 그랗다고나...
  2. 바늘꽃reply | del   2008/12/18 01:57
    한시는 호젓해서 좋아요. 갑자기 훌쩍 낚시를 하러 가고싶어지네요.^_^;
    • 벽헌del   2008/12/18 08:45
      겨울철 낚시가 한맛이 있다고들 하던데...
      저는 워낙 추위를 타기에 한번도 못가봤답니다.
  3. reply | del   2008/12/18 16:46
    안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전화온 친구가 '넌 좋겠다' 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었는데.. 그렇다고 자리 함 바꿔볼까? 하면 그러지도 않을 녀석들이..ㅋ
    한시는 읊는 소리로 들으면 더 제대로일거 같은.. 읽는 운율이 있지요?
    여기서 보는 것만도 감사하지만요..^^
    • 벽헌del   2008/12/18 20:12
      중국어로 읊는 한시는 노래처럼 들리더라고요.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문제지만요;;;
  4. AQUAreply | del   2008/12/20 09:24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나보다는 이상하게 남들 사는 모습이 더 편하고 왠지 행복해보이고 그런것 같아요.
    우아하게 물 위를 헤엄치는 백조도 사실 물 안에서 부지런히 짧은 발로 휘저으며 헤엄을 치는걸것이고...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이 다 보기만큼 좋은 것은 아닐거고...
    화려하고 부자인 사람들의 삶이 겉에서 보기만큼 행복하지는 않을것이고^^
    어쩌면 내가 제일 팔자 편하고 행복하다...생각하고 사는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네요.
    올해도 이제 열흘 정도 남았어요. 남은 열흘이라도 행복하게 지내시고 2009년 새해에는 좋은 일들 가득하시길 기원할게요.
    • 벽헌del   2008/12/20 09:48
      자신의 삶이나 환경 등이 백프로 만족스럽지가 않고,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있는 욕망이 원인일 듯합니다. 아쿠아님 말씀대로 현재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나저나 또 한해가 저물어가네요. 세월이 너무 빨리 흐릅니다...
  5. 스테파니reply | del   2009/12/25 11:47
    서핑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님 블로그..재미있네요..
    한시의 매력을 시험의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내가 좀 속물스럽지만
    그렇게라도 한시를 즐기는게 어디냐며 변명하며
    오늘도 물고기처럼 바둥거립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은 비록 힘없는 공시생이지만
    마음만은 부자인...아니 부자이고 싶은 지나가던 여자사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