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시절에는 '자살'은 무조건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세상 일은 무조건 옳거나 그르다고 양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군요.
자살이 비겁한 도피일 수도 있지만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되었고요.
불치병에 걸려 지독스런 고통에 시달린다거나, 알츠하이머로 인간의 존엄성조차 지킬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자문해 보기도 했었지요. 또한 도저히 피할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거나, 살아남는다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겪게 된다거나, 나의 희생으로 보다 가치있는 것을 보호할 수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결정할까 생각해보기도 했었습니다.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제가 당사자가 아니니 그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마는 고인의 성품으로 미루어보자면 살아서 치욕을 겪느니 죽음으로 끝을 내겠다는 비장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전모씨처럼 일단 몸을 굽혀 굴욕을 감내하다가 지갑에 39만원만 넣어두고 호의호식하며 만수무강하는 뻔뻔한 옵션은 자존심과 오기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경우였을 듯합니다.

측근과 가족들이 뇌물을 받은 것을 고인이 정말 몰랐는지의 여부는 저도 물론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그 정황을 캐어들어가는 검찰의 행태는 분명히 치졸하면서도 교묘했지요.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고, 저질 언론들과 가열차게 힘을 합쳐서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떠벌리면서 우매한 대중들을 호도했습니다. 연쇄살인범에게도 인권은 있다며 '씨'을 붙여 호명하고 사진에 모자이크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바로 직전의 국가 원수에게는 일단 망신부터 주고보자는 심보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벼랑끝으로 몰아갔습니다. 설마 진짜로 벼랑에서 떨어져버릴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주위에 있는 대다수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활로를 구걸하리라 믿었겠지요. 남의 치부를 드러내어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것을 정책이라 여기는 인간들이, 권력과 금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굴욕이든 참아낼 수 있는 의지를 가지신 분들이, 어두운 곳에서 몰래 야합하는 것이 정치의 본색이자 근간이라 믿는 양반들이, 얼굴 가죽의 두께가 바로 덕목이며 뻔뻔함이 바로 능력이며 양심이란 바로 자기 자신부터 속이는 것이라 알고계신 분들이 치욕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정치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은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니까요.

'바보 노무현'이라 불리던 사람은 바보처럼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공과를 논하는 것은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에게 넘기고, 저는 그저 조용히 추모나 하렵니다.
저 세상에서는 부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덧 1)
글쓰기 마치고 뉴스를 보니 검찰이 수사를 쫑내기로 결정했다더군요.
현 정권과 관련된 천신일씨에 관련된 비리 조사도 이번 기회를 틈타 어영부영 구렁이 담넘듯이 쫑내려나요?
떡값을 책임져주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높이높이 모시는 대한민국 떡검사들이 과연...?

덧 2)
한동안 상태가 메롱이라서 인터넷이며 블로깅이며 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월쯤에 밝은 기분으로 돌아오려 했는데......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글
트랙백 주소 - http://mojolog.com/tcb/trackback/41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띠용reply | del   2009/05/23 19:30
    에고고 오랫만에 포스팅하셨는데 안좋은 일이라니..ㅠㅠ
    • 벽헌del   2009/05/24 02:09
      온종일 마음이 참 무겁네요.
  2. AQUAreply | del   2009/05/25 14:46
    안타까운 소식으로 다시 글을 보게 되서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벽헌님의 글이 반가운 마음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벽헌del   2009/06/03 16:18
      벌써 열흘이 지났네요. 다시한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쿠아님 반갑습니다.
  3. 개밥그릇reply | del   2009/05/27 10:06
    법은 인간과 사회를 규율하는 약속에 불과합니다. 국가체제를 유지, 보호하기위한 방편으로 법치가 이뤄진다면 법률가국가에 다름아니겠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형님! 건강하시지요...
    • 벽헌del   2009/06/03 16:22
      오랜만이로다!!
      한동안 상태가 다시 별로였는데,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다. 너도 이제 슬슬 중년에 접어들었지? ㅋㅋㅋ 한살이라도 젊을 때 몸조심하거라.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법치국가 아닌거 맞나보다. 돌아가는 꼬라지보면 우리 대학 다닐 때로 돌아간 느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