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4일 작성]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은 진정으로 글을 제대로 쓰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쥐약이다.
특히 그 사람의 글이 어느 정도의 경지, 즉 잘 쓴 글이라고 칭찬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면 더욱 그렇다. 자만심이 생기게 하고 자기 글에 만족하게 하며 그리하여 더 노력을 하지 않도록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되었다, 남들도 잘 쓴다고 그러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되면 발전은 여기서 멈추어버린다.
자기의 글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리고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고 글을 읽는 독해 능력도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 역시 객관적 기준을 잡기가 매우 힘들다. 어느 글이 더 낫다는 비교 역시 자신의 글이든 남의 글이든, 명확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섣부른 칭찬은 쥐약이 되고, 덫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칭찬의 말이 솔깃하게 귀에 들어오기가 쉽고, 덜컥 믿어버리기도 쉽다는 이야기다.
그럼 도대체 잘 쓴 글은 무엇인가?
나는 그 정의를 내릴만한 자격도 없거니와 실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억지로 정의를 내린다고 하여도 그것은 나의 기호에 따르는 것일 뿐이며, 그러므로 만인의 동의를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글쓴이의 정신이 들어있지 않으면 결코 잘 쓴 글이 될 수 없다는 것. 혼이 깃든 글이라고 해도 좋고, 진정이 들어있는 글이라고 해도 좋겠다. 내가 어디선가 주워듣고 가끔 써먹는 '좋은 글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다'는 말과 통하는 이야기다.
겉보기가 화려하거나 단정하거나 아름답거나 재미있거나 논리적이거나 치밀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잘 쓴 글은 아니다. 문장이 매끄럽고 비문이 없으며 사용한 단어가 적절하고 수사법이 멋지다고해서 그것이 잘 쓴 글은 아니다. 정신이 들어있지 않다면 단지 2%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곧잘 쓴 글'에 불과하다. 여기에 혼이 깃들어야 비로소 진짜로 잘 쓴 글이 되는 것이다.
글에 혼을 넣는 것은 장인이 예술 작품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갈고 다듬고 매만지고 또 다듬으며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고 믿는다.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줄 수도 없을 것이다. 글도 자꾸 쓰면 늘게 마련이지만 이것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곧잘 쓴 글까지는 어떻게 되겠지만, 진짜로 잘 쓴 글의 경지에 이르려면 남다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력이라는 것은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
섣부른 칭찬은 노력하는 고통을 멈추라는 달콤한 유혹의 속삭임으로 들리며, 그러므로 쥐약이 되고 덫이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정말 잘 쓴 글을 창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으며, 곧잘 쓴 글 정도에 만족해도 된다. 아니 그보다 수준이 아래인 단계에 머무른다고 욕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정말 잘 쓴 글을 만들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칭찬하는 소리 때문에 자만심에 빠져서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꽤 오랜 기간 인터넷을 헤메며 글을 읽다보니 처음에는 좋은 글을 써보고자 노력을 하던 친구들이 어느새 칭찬에 길들여져서 더 이상 발전을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일부는 칭찬받는 재미에 빠져서, 노력을 멈추는 것에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칭찬을 받기 위한 잔재주만 늘어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건 멈춤이 아니라 퇴보다. 이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칭송을 하고 싶다면 어쩌란 말이냐는 의문이 떠오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는데, 좋은 글을 읽고서 칭찬도 하지 말자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칭찬을 해줘야 한다. '글을 잘 쓴다'고 하지말고 다른 표현을 하면 된다.
내용이 좋았다면 참 좋은 내용이라고 칭찬하고, 글이 아름다우면 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명쾌한 논리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을 이야기하고, 시각이 독특했다면 그 부분을 집어주는 것이다. 즉 자기가 좋게 본 바로 그 부분을 칭찬하자는 이야기다.
이런 칭찬은 글쓴이에게 자만심을 갖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는 진실로 좋은 글을 쓰고자하는 사람이기에 자기 글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므로 '잘 썼다'가 아니라 '좋은 부분'을 칭찬하는 말은 격려로 들리지 노력을 멈추라는 유혹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또 더욱 바람직한 자세를 가졌다면 이러한 칭찬으로 인하여 자기 글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게도 된다. 또한 독자가 자기 글을 제대로 읽어주었다는 고마움도 '잘 썼다'는 칭찬을 들을 때보다 훨씬 많이 느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 분이 계실 듯하다. 누구나 정말 잘 쓴 글을 창조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글 잘 쓴다'라고 칭찬해도 상관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
앞에서 말했던 노력을 멈추게 되는 우려는 이 경우 해당사항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또다른 폐단이 있다. 그저 글을 '곧잘 쓰는' 수준에 불과한 사람들이 '잘 쓴다'는 칭찬을 받으면 정말로 자기가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게다가 글을 읽는 사람이 모두 어느 수준 이상의 독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곧잘 쓰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잘 쓴다'는 칭송을 듣게되는 경우도 많다. 아직 자기만의 문체를 가지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어법도 구사하지 못하고, 잘못된 비유나 단어가 적잖게 섞여있고,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여럿 보이고, 심지어는 기초적인 맞춤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글을 그저 자기 수준에서 보아 '잘 썼다' 고 칭찬하는 일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역시 '곧잘 쓰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글을 '잘 쓴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착각에 빠지면 그 후로 이들의 글은 더욱 질이 나빠진다. 되도않은 자신감이 붙어서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글을 마구 갈겨대는 것이다.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면 글 속에 '나는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오만방자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마디로 좋은 글을 읽고자 하는 사람의 비위를 매우 심하게 뒤집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참아줄 수 있다.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글쓰기를 배우는 도중에 있는 사람들이 '잘 쓴다'는 칭찬을 보고서 정말 그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오해를 하기가 십상이라는 점이다. 대개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은 아직 글을 읽는 눈도 아직 배우는 수준이기가 쉽다. 자기만의 글을 보는 눈을 갖지는 못했기에 다른 사람의 칭찬을 믿어버리기도 쉽다. 믿고 오해하는 것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자칫하면 잘못된 글쓰기를 따라하게 된다. 정말 잘 쓴 글을 모방하는 것은 훌륭한 글쓰기 학습이 되지만 실제로는 별 수 없는 글을 모방하면 결과는 뻔하다. 또 하나의 잘못된 글이 나올 뿐이다.
이런 폐단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동안 노력을 중지하는 경우보다도 훨씬 많이 보았다.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목격한 경험이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는 없으며 그저 시류에 영합하고 인기를 따를 뿐인 글의 남발, 또한 그 글도 다른 누군가의 잘못된 글쓰기를 따라한 것에 불과한데도 섣부른 칭찬을 믿고서 또 따라하는 악순환... 실례를 들자면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도 서넛이 되는데, 인신 공격이 될 듯하므로 생략하기로 하겠다.
아무튼 나의 섣부른 칭찬이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것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쥐약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글 잘 쓴다'는 칭찬은 하지 말자. 그리고 이왕 칭찬을 하려면 좀 더 신경을 써서 제대로 된 칭찬을 해주면 좋겠다.
잘 썼다고 하는 대신에 좋았던 부분을 집어서 칭찬해주자. 그럼 모두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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